간증//


Part I. 아버지와 나


제가 열왕기하 2:1-14 본문을 선택한 이유는 본문의 내용이 저와 제 아버지의 스토리와 매치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며 따랐던 파파보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열정을 상징하는 불꽃같은 분이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존재감을 한껏 살려주신 따뜻한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제 곁에 계시면서 제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게 아버지를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주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선 제게 아버지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단다!” 라고 자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몸소 제게 보여주시므로 저 또한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만드셨던 것 같습니다.


파파보이 임서현, 아버지를 쫓아다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했던 저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랐던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어디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죠. 모든 남자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영웅이고 아이들은 그런 강하고 큰 존재와 늘 함께 할 수 있기를 사모하니까요.


아버지 또한 저와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셨고 어디든 저를 분신처럼 데리고 다니시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들을 아들과 함께 경험하길 원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 아버지와 함께하였던 사역, 아버지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등 이러한 모든 순간들이 제겐 소중한 꿈과 자산이 되었고,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나도 그런 삶을 살겠노라라고 결심하곤 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와의 기억이 아주 어린 시절까지 내려갑니다. 제가 유치원에 다니던 5, 6살 시절 아버지께서 전도하러 가실 때 주보를 들고 따라다녔던 것이 제가 아버지와 함께 한 사역의 첫 기억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뭘 하는지도 제대로 몰랐지만 말이죠.


그리고 당시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방을 쓰게 된 것이 기억나는데, 그 때 혼자 어두움 속에 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죠. 그런 저를 위해 아버지께선 밤마다 불이 꺼진 저의 방에 들어오셔서 제 침대 옆에 앉아 성경의 영웅들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였습니다.


그 때에 엘리사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예전에 한 대머리 선지자가 있었단다.” 라고 시작하시며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여러 가지 기적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죠.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살린 기적을 설명하실 땐 엘리사가 죽은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제 몸 위에 몸을 쭉 펴시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시작했고, 성경 속 영웅들을 머리 속에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연습을 했습니다. 어둠을 이기게 해준 아버지의 따뜻한 음성, 저는 아직도 그 음성을 기억합니다.


목회로 바쁘셨던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아버지 서재를 찾아가면 늘 반기어 주셨고,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을 때도 때때로 아버지 서재로 들어가 아버지 책도 보고 신문도 보곤 했었습니다. 제가 10살이 되어 가족이 선교지로 나왔을 때에도 아버지를 항상 쫓아 다녔습니다.


선교지로 처음 나왔던 시절 한 가지 생각나는 추억은 아버지께서 15인승 봉고차로 교회 성도들의 라이드를 해주실 때 모두가 찬양을 부르며 다닌 것입니다. 저는 차 안에서 형님 누나들과 함께 찬양을 불렀던 그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라이드를 해주러 나가실 때 줄곧 따라 나서곤 했는데요, 아버지께서 오늘은 사람이 많이 타서 같이 못 간다.” 라고 말씀하셨던 날에도 몰래 봉고 트렁크에 숨어서 따라가려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이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15살 때 처음 입어보게 된 아버지의 옷


엘리사는 소를 치다가 엘리야의 겉옷을 처음 입어보게 되고, 엘리야가 승천한 이 후에는 그 겉옷을 취하여 엘리야의 소명을 이어가게 됩니다. 저도 어린 시절 이와 비슷하게 아버지의 옷을 처음 입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10대 초반에 중국에 와서 방학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 중국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어렸을 땐 그저 아버지 사역지를 따라 다니면서 아버지께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시는 모습을 보기만 했었는데요, 제가 15살이던 어느 매우 추웠던 겨울 방학 날 아버지는 저에게 아버지께서 양육하시던 훈련원의 학생들이자 중국 가정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보라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선교사가 될 사람들이니 영어를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요.


아버지께서는 저를 중국 중원에 있는 굉장히 가난한 마을로 데리고 가셨는데요, 그곳은 전기도 물도 안 나오는 매우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그 곳의 한 작은 건물에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던지 그 마을의 어린 아기들의 손이 동상에 걸려 시퍼렇게 얼어 있었습니다.


그 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나 두 끼 밖에 먹지 못했고, 보통은 한 끼를 먹는데 손님이 오면 두 끼를 먹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사는 집들은 창문으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그대로 새어 난방이 전혀 안 되는 집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선 제게 그 곳에서 몇 일간 영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세팅을 해 주시고선 다른 중요한 일들이 있다며 친구분과 함께 휑하니 가버리셨습니다. 저만 남겨두고 말이죠.


아니, 어떻게 아버지가 15살 난 어린 아들에게 그럴 수가 있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그 때 굉장히 흥분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뭔가 한 명의 사역자로서 신뢰를 받고 의탁을 받은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못 미더우셨다면 절 두고 떠나지 못 하셨을 텐데, 제가 그만한 일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만 하다고 생각하셨기에 맡기고 떠나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바로 그 교실 앞자리에 서서 아버지께서 가르치시던 학생들을 가르치자니 뭔가 아버지의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의 큰 양복을 입고 아빠 놀이 하곤 하지 않습니까? 약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들은 저를 小白老师 (작은백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중국은 사역자들이 가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白老师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계셨는데요, 아버지를 바이라오스라고 부르니 아들인 저는 작은 바이라오스가 되었습니다.


중국 가정 교회에선 10대에 사역자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곳에 있었던 30, 40대 분들도 15살짜리 청소년을 선생님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전혀 없었던 같아요. 그들이 저를 작은백선생님이라고 불러주자 왠지 아버지의 이름을 빌린 듯한 느낌마저 들어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에 불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옷과 이름을 입고 그 자리에 서니 뭔가 굉장히 설레고 흥분되었습니다. 비록 고생스런 환경 속에 있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뭔가 제가 늘 사모했던 아버지의 삶에 조금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신났었는지 모릅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중국 가정 교회의 신앙인들과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영어 수업은 인텐시브로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늦은 밤에 수업이 끝나자 그들은 저를 강사용 방으로 데리고 가서 그 곳에서 자라고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강사들을 그렇게 따로 묵는 방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이 곳에서 자주 주무셨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잠을 자려니 창문으로 밤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침대도 얼음덩어리처럼 딱딱하고 차가워 도저히 그냥 잘 수가 없었습니다. 두꺼운 이불이 있었지만 밖에서 자는 거나 마찬가지로 추워서 두꺼운 파카를 입고 내복에 옷을 몇 겹이나 껴입고 장갑에 마스크에 모자에 안경까지 쓰고 눈사람처럼 해서 잠을 자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겨우 잠이 들었는데 그 형제 자매들이 새벽 5시에 예배 드리자고 저를 깨우는 겁니다. “추운데피곤한데…” 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예배를 드리는 교실로 비틀비틀 걸어가는데 도중에 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숙소로 쓰는 장소가 중간에 보이길래 봤더니, 그들은 제가 쓰던 방보다 훨씬 열악한 방에서 밤을 보낸 것 같았습니다. 어떤 학생은 장 의자를 붙여 만든 평상 같은 곳에서, 또 어떤 학생들은 맨 바닥에 짚단 같은 것을 깔고 잠을 잤던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숙소를 보면서 굉장히 놀랐었는데 예배실에 들어서선 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추운 겨울 새벽에 그들은 창문과 문을 다 열어놓고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알고 보니 이 분들은 이미 한 시간 전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날에도 밤 늦게 수업이 끝난 후에 그들끼리 늦게까지 기도를 했었는데 말이죠.


그 때 처음 보았습니다. 중국 가정 교회의 신앙의 진면목을! 그러면서 그 곳의 열악한 환경이 힘들게 느껴졌던 제 자신이 정말 부끄러워서 더욱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저는 이 곳 인도네시아로 오게 되면서 감사하게도 중국 가정 교회의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중국 교회에 의해 보냄을 받은 한국인 선교사인데요, 저는 제가 어린 시절에 놀라움 속에 바라보았던 신앙의 주인공들인 중국인 형제, 자매들에 의해 파송을 받아서 이 곳 인도네시아까지 왔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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