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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안을 찾아서 2

조회 수 30052 추천 수 0 2004.07.19 09:17:49
네스토리안을 찾아서 2

이용규

아시아 지역에서의 기독교의 역사를 밝히는 일은 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기초가 된다.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서구인의 종교가 아닌 아시아인 대다수의 주된 종교였다는 것, 그리고 이슬람이 중동 및 중앙 아시아인들의 민족 종교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네스토리안의 역사를 다루기 위한 기초로 시급히 한 가지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 문제는 서구 문화와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편견에 대한 것이다.  중동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도할 때 오는 장벽 중의 하나가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자신들의 민족 종교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슬람을 버리는 일을 자기 민족과 친족들을 버리는 것과 동일시 한다.  아울러 기독교와 서구 문화를 동일시한다.  그래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서구화되는 것이자 자신의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와 서구를 동일시하는 견해는 종교적 열정을 빙자해서 유럽이 근동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던 십자군 전쟁이라는 역사 사실을 통해 강화되어 왔다.  더욱이 무슬림들이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부터 받은 상처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가지게 했다.  최근 미국에 대한 반감도 서구 문화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면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안은 기독교가 서구에 기원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서구를 통해서 복음을 접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일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중에 아프리카 출신으로 아프리카 역사를 가르치는 분이 있다.  그는 원래 무슬림이었는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는 선교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껴서 이웃 지역의 미국인 선교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무슬림을 전도했을 때 오는 여러 가지 압력과 또한 한 무슬림의 회심이 알려졌을 때 그 회심자에게 다가올 사회적 핍박이 염려된 나머지 그를 교회 공동체에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지인은 선교사 도움 없이 하나님을 만났고, 선교사는 오히려 그의 회심을 저해했다는 사실이다.  이 일화가 말해주는 중요한 사실은 그 무슬림 출신 교수의 신앙이 서구를 통해서 그에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무슬림으로써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회심했던 것이다.  

물론 필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기독교가 서기까지 헌신해 왔던 많은 서구 선교사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헌신과 기도와 가르침이 이 지역들의 복음화를 위한 씨앗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복음이 서구로부터의 수입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구의 선교사가 복음을 전했다고 해서 복음을 서구 문화와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리상의 대발견 이후에 기독교가 유럽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세계로 전파되었다고 이해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예수님의 직제자들의 시대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아시아에서의 초기 기독교회들은 그 뿌리와 전통면에서 유럽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사도들의 전승 문제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로마 교회와 안디옥 교회는 자기 교회의 설립자로 베드로를 지목해 왔듯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여러 사도들의 전통에 자신들의 기독교 전통을 두고자 해 왔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마가를 창시자로 여겼다.  러시아 인과 스코트 인들이 안드레를 자신의 교회의 기원으로 주장하듯이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도마가 자신들에게 신앙을 전수해 주었다고 믿었다.  심지어 도마는 중국에까지 갔다는 전승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는 이디오피아에서 전도했다고도 하고 이란 지역에서 목회하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은 이집트로 갔고, 유다는 메소포타미아로 갔지만, 결국 둘다 에데사와 이란 지역에서 목회하다고 순교했다고도 한다.  바돌로매 (나다나엘)는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기독교는 서구적인 종교가 아니었다.  

서구의 학자들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그러한 전승에 대해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다.  물론 사실 여부는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는 유럽에만 머물지 않고 아시아로도 갔으며 아시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사도들의 직접적인 전수에 기반을 둔다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아시아 지역의 전승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엄격한 기준을 유럽의 기독교 (당시 카톨릭)에도 같이 적용한다면 교황이 주장하는 베드로의 사도권 계승도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카톨릭의 베드로 사도권 계승 주장은 마태복음 16장 19-20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기초를 이야기한 것은 베드로 자신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카톨릭이 베드로의 사도권을 이었는지의 여부 또한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카톨릭 전통이 베드로의 사도로써의 권위와 전승에 기초를 두는 것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혈연적인 자손이라는 의미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혈연을 넘어서서 아브라함과 우리가 믿음이라는 고리를 통해서 조상과 자손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시아에서의 사도 전승을 역사적인 사실여부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아시아의 기독교가 현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유럽이나 로마의 기독교 전통의 경우도 헬레니즘이라는 이방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에 의해 세워진 교리가 모두 그리스 로마 철학의 기초에 위에 세워졌던 것은 그 한 예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권에 선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에 근거해서 복음을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스 로마 전통에 의거해서 세워진 로마 제국과 유럽의 기독교 전통은 기독교의 지역적인 토착화의 한 예이다.  따라서 비 유럽적인 토착화에 대해서 우리가 지나치게 경계하거나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균형적인 태도는 아니다.

유럽이 그리스 로마 전통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상식도 오해에 가까운 것이다.  유럽의 게르만계 또는 프랑크계 왕조들은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리된 이후 신성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을 따서 서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자처해 왔다.   오히려 그리스 로마의 전통은 중동의 이슬람권 학자들에 의해서 전수되고 발전되었으며 이슬람 초기 교리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전통 또한 이슬람권으로 흡수되었다.  그리스 전통은 르네상스 이후에 비로소 유럽에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은 이들 이슬람권의 아랍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서 그리스 문화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즉 중동 지역이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 로마 문명의 또 다른 계승자인 것이다.  따라서 유럽 문명과 그리스 로마 문명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신념에 가까운 것이다.  마치 인도 교회가 도마를 자기 교회의 기초를 세웠다고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울러 이슬람교가 투르크인, 아랍인, 페르시아인들의 민족 종교라는 믿음도 허구이다.  중동, 중앙 아시아 지역은 기독교가 무척 활발했던 지역이다.  다음 호에서 계속 논의되겠지만, 이슬람이 7세기 경 세력을 확장한 이후에도 15세기까지만 해도 중앙 아시아와 중동의 많은 지역에는 크리스챤의 수가 무슬림 수 보다도 많았다.  이슬람의 특징은 전파됨과 동시에 현지의 토착 문화를 파괴한다는 데 있다.  그 주된 원인은 아랍어가 성스러운 언어로써 종교와 함께 보급되면서 아랍적인 요소들이 현지 문화 속에 파고 든다는 점에 있다.  이슬람의 경우는 아랍적인 것과 이슬람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다.  그 결과 현지의 문화와 전통이 단절되면서 후대에 가서는 이슬람 전통만이 그들의 유일한 전통인 것처럼 이해된다.   언어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기독교의 경우, 이슬람과 반대로 아프리카 지역의 토착 문화를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이유는 성경을 현지어로 번역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어 주거나 발전시켜 줌으로 해서 그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시켜 주었다.  조선 말과 일제 시기에 있어서 한글 성경이 한글과 문화를 보존하는 데 미친 영향이 컸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중앙 아시아나 페르시아 지역의 이슬람 문화는 토착적인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투르크인, 몽골인,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에게는기독교적 전통도 이슬람적 전통 이상으로 중요한 전통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복음이 서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한국적인 것이나 서구적인 어떤 것을 선교지에 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가려는 곳은 이미 사도들이 거쳐갔던 그리고 복음의 그루터기를 심었던 곳이다.  이슬람이 들어가기 훨씬 이전에 그 땅의 조상 중 상당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모두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바 있었다.  특이하게도 현재 가장 왕성하게 선교사를 파송하는 미국, 한국, 중국, 남미 등지의 교회들은 복음의 변방이었던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 복음의 변방 지역이었던 곳에 있는 교회들이 이제 사도들의 초기 전도 대상이었다가 잃어버린 민족들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는 말씀의 역사적 실현일까?

그러면 아시아에서의 기독교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는가?  아시아에서의 기독교 전통과 교리 그리고 그것의 확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제국에서의 교리 논쟁에서부터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다음 호에서는 로마 제국 시기의 성자론을 둘러싼 교리 논쟁의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것이 아시아에서의 기독교 형성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이 문제는 한 편으로는 이슬람 세력 확산의 이론적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한 번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사안인 것이다.  
    

고동원

2004.07.23 14:52:00

아프리카 출신 교수란 Lamin Sanneh 교수를 말하나요? 기독교의 비서구적 기원뿐만 아니라 21세기 탈서구 세계 기독교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작년에 출판된 그분이 쓴 Whose Religion is Christianity?(130pages, WM.B. Eerdmans Publishing Co.)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이용규

2004.07.24 11:12:48

예 맞습니다. 나이지리아 선교사의 아들로 그 분의 지도학생으로 있던 친구로부터 그 교수에 대해 많이 전해들었지요. 그 분의 책을 아직 읽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동원

2004.07.24 17:55:31

작년 2월말에 장신대 선교대학원 학생들이 예일대를 방문했을 때 Lamin Sanneh 교수와 만남이 있었는데 제가 통역을 했습니다. 그 때 함께 했던 아내는 '라면 교수'라고 부르더군요..^^

김영수

2007.07.05 16:53:58

복음이 이미 전 인류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 교통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시대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상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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